미국 DARPA(국방고등연구계획국)는 국방부 중심 R&D 시스템으로 요약되는 미국 혁신의 상징이다. 한국정부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이 진정한 '무기체계'일까. 무기체계외 비무기체계(전력운용체계)의 이분법적 사고에서는 혁신적인 4차 산업 기술들이 국방에서 실험되고, 운용될 기회가 상실된다. 이제 전쟁은 유무형의 영역을 넘어 진행된다. 이번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군의 침공직전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인 사이버공격이 이루어졌다. 이제 하나의 패턴이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기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직원 3명' 모더나에 베팅한 美…韓 절실한 ARPA-H 성공 조건
"2013년 미국 DARPA(국방고등연구계획국)가 민간에 투자한 첫 사례는 당시 직원이 단 3명이었던 작은 회사 모더나 였습니다."
지난 23일 열린 제1차 보건의료 R&D 연합포럼. 기조 발제를 맡은 선경 고려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는 신생 회사인 모더나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낼 수 있었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DARPA는 1958년 세워진 미국 국방부 산하에 있는 첨단과학기술연구소다. 정밀 무기나 스텔스 기술 같은 군사 기술뿐 아니라 인터넷, 위치정보시스템(GPS), 자동 음성 인식 등 생활에 직결된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해 왔다.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겨질만큼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목표를 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장기간 지원하는게 성과를 낸 비결로 꼽힌다.
DARPA가 mRNA 기술을 연구하는 모더나를 지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mRNA는 세포에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유전물질이다. 기존 백신은 항원 단백질을 직접 몸안에 넣는 방식이었다면, mRNA 백신은 이 유전물질을 우리 몸에 넣어 코로나바이러스를 공격하는 항체로 만드는 방식이다. 선 교수는 "2010년 'whatif(만약에)'라는 황당한 가능성을 가지고 얘기가 나왔던 것이 mRNA"라면서 "2013년 DARPA에서 직원 3명 있는 모더나를 지원한 것이 쌓여서 현재 코로나 백신 개발까지 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DARPA(국방고등연구계획국) 홈페이지.
미국은 현재 국립보건원(NIH) 내에 'ARPA-H'(의료고등연구계획국)를 세울 준비를 하고 있다. 보건의료분야에 DARPA의 정신과 전략을 접목한다는 취지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ARPA-H 설립에 65억 달러(한화 약 7조2052억 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국형 ARPA-H'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바이오헬스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관료주의에서 벗어난 혁신지향적인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쏟아졌다.
바이오안보 미·중 패권경쟁 심화…"'기술 우위'는 생존 전략"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바이오 안보 분야에서의 미·중 패권경쟁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강선주 국립외교원 교수는 “코로나가 초국가적으로 퍼졌지만, 미국과 중국은 팬데믹 상황에서 협력하지 않았다"면서 "양국은 협력이 상대국에 (바이오 안보) 우위를 제공할 것을 우려해 개별적으로 보건 의료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했다"고 분석했다.
미·중이 서로를 견제하며 각각 우방국들을 모아 기술동맹을 맺으면서 바이오 안보 대응은 블록화(진영화)되는 추세다. 이명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경제협력개빌기구(OECD) 보고서를 바탕으로 "미국은 그동안 국제 공동연구 주체로 많이 등장했지만, 중국이 코로나 이후 영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국제공동연구에 등장하는 것은 눈여겨볼 만 하다"면서 "미·중 패권 측면에서 기술 블록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위원은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할수록 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불리하다”며 “바이오헬스 분야는 코로나처럼 위기 발생 시 대외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압도적인 기술 우위 선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0년 1월부터 11월까지 생물의학 분야에서의 국제 연구협력 현황. OECD..
한국형 'ARPA-H'…"관료주의 타파하고 실패 받아들여야"'
이에 따라 한국형 ARPA-H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현재 국내 R&D 거버넌스의 가장 큰 문제는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이규택 산업통상자원R&D전략기획단 신산업MD는 패널 토론에서 "(보건의료 분야에서) 기초는 주로 과기부, 개발·사업화는 산업부, 임상은 복지부에서 많이 해왔었다"면서 "그것을 아우를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간(기업)은 실패를 반복하면 회사가 망하는 만큼, 실패가 충분히 예견되는 굉장히 어려운 고난이도(연구)는 정부가 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촉진자' 역할을 촉구했다. 보건산업진흥원이 최근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반인의 94.7%, 연구자의 97.3%가 국내 첨단의료기술 개발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ARPA-H와 같은 특별 조직 도입 필요성에 공감했다.
23일 열린 보건의료 R&D 포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선경 교수는 한국형 ARPA-H는 3대 미션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위험부담이 커서 기업이 단독으로 뛰어들기 어려운 과제(Highrisk, highreward), 불확실한 감염병 발생 등 공익적인 과제(Publicneed), 그리고 최고 기술력에 닿기 위한 도전적인 과제(Challenge)가 그것이다. 선 교수는 "관료주의를 타파하도록 의사결정 구조를 혁신적이고 슬림(slim)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대한민국 현실을 고려한다면, 결국 대통령 소속 위원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형 ARPA-H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람과 조직의 문화가 중요하다"면서 "인재를 PM으로 발탁해 자율권을 주고, 성실한 실패가 가능한 구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